범어사팔상전 부산 금정구 청룡동 국가유산

이른 아침의 공기가 차분히 내려앉은 날, 부산 금정구 청룡동의 범어사 팔상전을 찾았습니다. 절집 안쪽 깊숙이 자리한 이 전각은 신라시대 창건 이래 오랜 세월 불교의 중심을 지켜온 범어사의 핵심 공간 중 하나로, 지금은 국가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안개가 서서히 걷히며 대웅전 뒤편의 팔상전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 건물의 단아한 형태와 단청의 색감이 눈길을 붙잡았습니다. 마당의 돌계단을 오르자 향내가 은은히 풍겨왔고, 나무 기둥에 스친 햇살이 미세한 금빛을 띠었습니다. 고요한 산사의 공기 속에서 팔상전은 화려하지 않지만 깊이 있는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불교의 교리를 조용히 품은 건물, 그 자체가 하나의 경전처럼 느껴졌습니다.

 

 

 

 

1. 올라가는 길과 첫인상

 

팔상전으로 향하는 길은 범어사 대웅전을 지나 오른편 계단으로 이어집니다. 길 양쪽에는 오래된 향나무와 동백나무가 자라, 사계절 내내 푸르름을 잃지 않습니다. 돌계단을 오르며 고개를 들면 팔상전의 팔작지붕이 시야에 들어오고, 단청의 녹청색과 붉은색이 어우러져 은은한 빛을 냅니다. 입구 앞에는 작은 석등 하나가 자리해 방문객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습니다. 문턱을 넘으면 바닥이 반질반질한 마룻결이 눈에 들어오고, 공기 중에는 오래된 나무 냄새가 가득했습니다. 건물의 균형감과 단정한 선이 인상적이었고, 주변의 산세와도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처음 마주한 순간 느껴진 것은 장엄함이 아니라 ‘깊은 정적’이었습니다. 모든 소리가 멈춘 듯 고요했습니다.

 

 

2. 구조와 내부의 조형미

 

범어사 팔상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2층 목조건물로, 전형적인 조선 후기 불교 건축 양식을 따릅니다.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얹혀 있으며, 처마 끝의 곡선이 매우 부드럽고 안정감이 있습니다. 1층 내부에는 팔상도를 비롯한 불교 벽화가 정교하게 그려져 있는데, 섬세한 채색과 인물 표현이 눈을 사로잡습니다. 팔상도는 석가모니의 일대기를 여덟 장면으로 그린 그림으로, 출생부터 열반까지의 과정을 상징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그림마다 인물의 표정과 자세가 달라 한참을 바라보게 됩니다. 벽화 아래쪽에는 불단이 자리하고, 중앙에는 목조불상이 단정히 모셔져 있었습니다. 천장의 단청 무늬는 구름과 연꽃을 형상화했으며, 색감이 짙지 않아 공간 전체가 차분했습니다. 빛이 창살을 통해 들어와 불단 위에 닿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3. 역사적 배경과 상징

 

팔상전은 불교의 교리를 시각적으로 전하는 교육의 공간으로, ‘팔상’이란 석가모니의 생애를 여덟 장면으로 나눈 불화 형식을 뜻합니다. 범어사의 팔상전은 조선 후기, 영조 연간에 중건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부산 지역에서는 유일하게 팔상전을 온전한 형태로 보존하고 있는 건물입니다. 이 전각은 단순히 불상을 봉안한 공간이 아니라, 불교의 역사와 철학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교학의 장이었습니다. 안내문에는 “그림으로 배우는 깨달음의 길”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당시 스님들이 팔상전을 통해 대중에게 불법(佛法)을 전하고, 참선의 의미를 나누던 모습을 상상하니 자연스레 숙연해졌습니다. 한 건물 안에 불교의 교리와 예술, 신앙이 조화롭게 담겨 있었습니다.

 

 

4. 보존 상태와 관리

 

범어사 팔상전은 세월이 오래 흘렀음에도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했습니다. 외벽의 단청은 색이 약간 바랬지만 오히려 그 덕에 자연스러운 깊이가 더해져 있었습니다. 내부 벽화는 주기적인 보존 처리를 통해 원형이 잘 유지되고 있었고, 습도 조절 장치가 설치되어 있어 색채의 변질을 막고 있었습니다. 기둥과 서까래는 시간이 만든 질감이 그대로 남아 있었으며, 균열이나 휨 없이 단단했습니다. 마루 아래에는 빗물 배수로가 자연스럽게 이어져 있어 구조적으로도 안정감이 있었습니다. 관리 스님이 “팔상전은 범어사의 숨결이 가장 고요한 곳”이라고 말하셨습니다. 방문객들이 많지 않아 조용했고, 그 고요 속에서 목재의 냄새와 향 냄새가 은은하게 섞여 있었습니다. 보존보다 ‘살아 있음’에 가까운 느낌이었습니다.

 

 

5. 주변 연계 탐방 코스

 

팔상전을 둘러본 뒤에는 범어사의 주요 전각들을 천천히 돌아보는 것이 좋습니다. 대웅전, 범어사 3층석탑, 그리고 원통전을 잇는 길은 불교 건축의 다양한 양식을 한눈에 보여줍니다. 특히 대웅전 앞 마당에서 바라보는 금정산 능선은 언제 봐도 장관입니다. 절을 나서기 전에는 일주문 옆의 작은 찻집에서 녹차를 마시며 산사의 공기를 느껴보는 것도 추천합니다. 절 밖으로 내려오면 금정산성 남문까지 이어지는 등산로가 있어, 신앙과 자연을 함께 느낄 수 있는 하루 일정으로 완성됩니다. 봄에는 진달래가 피고, 가을에는 단풍이 절집을 붉게 물들입니다. 팔상전에서 시작된 여정이 금정산의 풍경과 어우러지며 더욱 풍요롭게 느껴졌습니다.

 

 

6. 방문 팁과 유의사항

 

팔상전은 상시 개방되어 있으며, 내부 촬영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불교 의식이 진행 중일 때는 정숙을 유지해야 하고, 신발을 벗고 입장해야 합니다. 내부 벽화는 빛과 온도에 민감하므로 손으로 만지거나 플래시를 사용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아침 9시 이전에 방문하면 햇살이 창살 사이로 들어와 불단 위를 부드럽게 비추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여름철에는 절집 주변이 습하므로 미끄럼 방지 신발을 착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겨울에는 마루가 차가우니 양말을 신은 채로 관람해야 합니다. 고요한 공간인 만큼, 말소리보다 발소리조차 조심스레 내야 했습니다. 마음을 가볍게 두고 천천히 걸으며 건물의 숨결을 느껴보는 것이 가장 좋은 관람 방법이었습니다.

 

 

마무리

 

범어사 팔상전은 불교 예술과 사상의 정수가 담긴 공간이었습니다. 건물 자체가 화려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깃든 시간의 무게가 묘한 울림을 주었습니다. 벽화의 색감, 나무의 결, 그리고 공기 중에 흐르는 향내가 서로 어우러져 하나의 조용한 교향곡처럼 느껴졌습니다. 불교의 교리를 글이 아닌 ‘공간’으로 표현한 장소, 그것이 바로 팔상전이었습니다. 문을 나서기 전 마지막으로 뒤돌아보니, 지붕 끝의 곡선 위로 햇살이 얹혀 부드럽게 반짝였습니다. 도시의 소음이 멀리 사라지고, 마음이 고요히 정리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다음에는 새벽 예불이 열리는 시간에 다시 찾아, 종소리와 함께 팔상전의 새벽 빛을 느껴보고 싶습니다. 팔상전은 금정산이 품은 ‘조용한 깨달음의 전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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